유교의 의례


석전

석전의 의의

석전이라 함은 문묘에서 공부자(孔夫子)에게 제사지내는 의식을 일컫는다. 즉 만세종사(萬世宗師)이신 공부자께서 남기신 인의도덕의 이상을 근본삼아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효제충신(孝悌忠信)의 실천과 수제치평(修齊治平)의 도리를 천명함에 있어 배사모성(拜師慕聖)의 예로서 생폐예제(牲幣醴齊)를 헌설(獻設)하고 공부자께서 자리에 앉아 계신 듯이 엄숙하고 경건하게 전례(奠禮)를 봉행하는 것을 석전이라고 한다.

그러나 원래는 문묘에서 선성(先聖), 선사(先師)에게 제사지내는 의식으로서 석(釋)과 전(奠)은 다 차려놓다는 뜻으로, 석채(釋菜)라 하면 빈번지류(蘋蘩之類)로 단조로운 차림이고, 석전은 생폐(牲幣)와 합악(合樂)과 헌수(獻酬)가 있는 성대한 제전(祭典)이다. 이러한 석전은 선성과 선현들의 학문과 인격과 덕행과 사상을 단순한 이론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를 숭모하고 존중히 여기며 스승을 높이하고 진리를 소중히 여기는 기풍을 체득하기 위하여 문묘에서 거행하는 의식이다.

본래 문묘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에 설립한 태학(太學), 신라시대의 국학(國學), 고려시대의 국자감(國子監), 조선시대의 성균관(成均館) 등의 국립대학 구내에 건립하여 국조(國朝)에서 주관하는 오례(五禮) 중에서 길례(吉禮)편에 속하는 국가적 중사인 석전을 지내는 장소로 사용되어 왔다. 이러한 태학이나 국학, 국자감, 성균관은 우리 나라의 유일한 전통적 민족대학으로서 유교를 근본이념으로 하여 인재를 양성해 온 교육기관이다.

석전의 유래(由來)

석전이란 학교에서 선성(先聖), 선사(先師)에게 제사지내는 의식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선사(先師)란 앞서간 전대(前代)의 훌륭했던 스승들을 일컫는 말이고, 선성(先聖)이란 주대(周代)에는 요(堯)·순(舜)·우(禹)·탕(湯)·문왕(文王)·무왕(武王)·주공(周公)을 일컫는 것이 고대 중국의 관례이고, 한(漢) 이후 유교를 국교로 받들게 되자 공부자를 점차 선성, 선사의 자리로 올려 문묘의 주향(主享)으로 모시는 동시에 석전으로 우러르는 관례가 정착이 되었다. 후한(後漢) 명제(明帝) 같은 제왕은 주공(周公)을 선성, 공부자를 선사로 삼아 공부자의 고택(古宅)을 찾아가서 석전을 올리기도 하였다. 위(魏), 수(隋), 당(唐) 이후로는 대체로 공부자를 선성, 안회(顔回)를 선사로 받들어 석전을 올렸다.

특히 당 태종 정관(貞觀) 4년(630년)에는 각 주(州)의 현(縣)마다 공부자묘(孔夫子廟)를 세웠는데 당 현종(玄宗)이 개원 27년(736년)에 공부자를 문선왕(文宣王)으로 추봉하였다. 공부자께서 돌아가신 후 그의 옛집 곡부(曲阜)에 묘(廟)를 세우고 후제(後齊)에 이르러 태학의 가운데에 공안(孔顔)의 묘(廟)를 두었다. 명(明)에 와서 태학의 문묘를 대성전이라 일컬어 석전을 올리는 사당으로 확립되었다.

우리 나라에 유교가 전래한 기록은 없지만 최초로 태학을 설립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인 서기 372년으로 이때 석전도 함께 봉행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백제는 국립 중앙학교 설립의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오경박사(五經博士) 등의 명칭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오고,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박사 아직기(阿直岐), 왕인(王仁)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국립 중앙학교도 석전의식을 봉행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신라에서는 진덕여왕(眞德女王) 2년인 서기 648년에 김춘추가 당나라에 건너가 그곳의 국학(國學)을 찾아 석전의 의식을 참관하고 돌아온 후 국학설립을 추진했고 신문왕(神文王) 2년에 그 제도가 확립되었다. 성덕왕(聖德王) 16년(717년)에는 태감(太監) 김수충(金守忠)이 당으로부터 공부자와 10철 및 72제자의 영정을 가져와서 국학에 안치했다는 기록이 있어 석전의식이 국학에서 봉행되고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고려에서는 『고려사(高麗史)』에 보면 국자감에서 석전례를 행한 것을 볼 수 있으며 성종(成宗) 2년(983년) 박사 임성로(任成老)가 송으로부터 공부자묘도(孔夫子廟圖) 한 폭과 제기도(祭器圖) 1권, 72현찬기(賢贊記) 1권을 각각 가져와 성종에게 올렸으며 현종(顯宗) 11년(1020년) 8월, 최치원을 선성묘에 배향하고 같은 13년(1022년)에는 설총을 또한 이 묘에 배향하였다. 예종(睿宗) 9년(1114년) 6월에 사신 안직승이 귀국할 때 송휘종(宋徽宗)이 신악기와 악보 및 지결도(指訣圖)를 보내 주었다. 이 때 보내준 악기는 속악기와 아악기가 혼합하여 있었다. 이 악기를 받을 하례사(賀禮使)로 추밀원(樞密院) 지주(知奏) 왕자지(王字之)와 호부(戶部) 미중(微中) 문공미(文公美)를 파견하였다.

예종 11년(1116년) 6월에 송에 하례사로 가 있던 왕자지, 문공미에게 휘종이 조서(詔書)와 함께 대성아악(大成雅樂)을 보내 주었다. 이 때에 들어온 대성아악은 순수한 아악기에 속하며 이와 함께 아악 연주에 필요한 무구(舞具), 무복(舞服) 장식 일습을 구비하여 보내온 것이다. 이 때 들어온 대성아악은 원구(圓丘)·사직(社稷)·태묘(太廟)·선농(先農)·선잠(先蠶)·문선왕묘 등의 제사와 그밖의 연향에 쓰이게 되었다. 충렬왕 30년(1304년) 6월에 고려의 국도 개경에 있던 국자감을 성균관으로 개칭하였는데 성균관이라고 하는 이름은 "一掌成均之法典 以治建國之學政"이라는 『주례(周禮)』의 성균에서 연원된 것이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태조(太祖) 7년(1398년), 숭교방(崇敎坊)에 성균관을 설치해 국립 최고학부의 기능을 다하게 했으며, 정전(正殿)인 대성전에는 공부자를 비롯해서 4성, 10철과 송조6현 등 21위를 봉안했고, 동·서무에 우리 나라 명현 18위와 중국 유현 94위 등을 봉안하여 매년 춘추 두 차례 석전을 받들어 행하였다.

그러나 일제치하인 1937년부터는 양력 4월과 10월의 15일로 변경하여 실시하다가 해방 후인 1949년에 전국 유림대회의 결의로 5성위(五聖位)와 송조2현(宋朝二賢)만 봉안하고 그 외 중국 유현을 매안(埋安)하고 우리 나라 18현을 대성전에 승봉종향(陞奉從享)하고 춘추석전을 폐하고 탄일(誕日)인 음력 8월 27일에 기념석전을 봉행하다가 2007년부터 공부자(孔夫子)의 기신일(忌辰日)을 양력(陽歷)으로 환산한 5월 11일에 춘기석전(春期釋奠)을 봉행하고, 탄강일(誕降日)을 양력으로 환산한 9월 28일에 추기석전(秋期釋奠)을 봉행하였다. 그러나 2014년부터 석전대제에 관하여 문화재청의 “198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 지정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라”는 공문에 따라 성균관은 2014년 추기 석전대제부터 일무와 아악을 198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 지정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며, 예법에 따라 2᛫8 상정(上丁) 석전으로 모시기로 결정하고 2014년 추기석전부터 시행하였다.

그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석전대제의 일자를 변경하였다. 고래로 석전은 중춘(仲春), 중추(仲秋) 상정(上丁) 일에 변함없이 꾸준히 모셔져 왔으나, 근래에 성균관의 몇몇 임원들의 잘못된 인식으로 인하여 2007년부터 석전(釋奠)을 공자님 돌아가신 날(양력 5.11)과 탄강일(양력 9.28)로 진행되었다. 석전은 춘(春)에 관(官)이 석전우기선사(釋奠于其先師)한다고 "예기(禮記)"에 기록되어 있고, 조선왕조실록에도 세종대왕 시대에 국법으로 춘추이중상정(春秋二仲上丁)으로 시일을 확정하였으며, "태학지(太學志)"에도 석전은 중춘추상순정일(仲春秋上旬丁日)이라고 분명히 밝혀져 있는 오래된 태학(太學) 전통의 헌장이었다. 이에 2᛫8 상정(上丁) 석전으로 모시게 되었다.

둘째, 석전대제의 음악(아악) 연행의 변경하였다. 문묘석전의 아악은 만세종사이신 공부자를 존숭하고 숭모하는 지극히 고아(高雅)한 음악이며, 나아가 인간 본연의 마음을 담은 음악을 갖추기란 고도의 숙련된 음악적 학습이 없이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이기에, 2014년 추기석전부터 198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 지정 당시 연주한 국립국악원 악사들을 모시고 연행하기로 하였다.

셋째, 석전대제의 춤(일무) 연행을 변경하였다. 문묘석전의 춤은 공부자의 문덕(文德)과 무덕(武德)을 몸동작으로 형용한 것인데, 그 춤사위가 1986년 석전대제의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 지정 당시의 것에 비해 큰 변화가 있어, 이것 역시 문화재청이 요청한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당시의 것으로 환원하여 모시기로 결정하였다.

오늘날의 석전(釋奠)

우리나라의 석전대제에는 중국이나 일본에도 남아 있지 않는 고래(古來)의 악기와 제기를 보유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고전음악인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과 고무(古舞)인 팔일무(八佾舞), 제관(祭官)이 입는 전통적이고 권위있는 의상과 고전적 의식절차 등이 화려하고 장중하여 예술적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유일하게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커서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러한 석전은 동양의 철학과 학문과 그 인습에 깊이 뿌리를 둔 종합적이고 복합적인 문화의 양식으로 오늘날까지 동양문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본질적인 맥락이다.

석전순(釋奠順)

1 전악(典樂)이 악사(樂士)와 무생(舞生)을 인솔(引率)하여 소정(所定)의 위치(位置)에 들어감.
2 찬인(贊引)이 대축(大祝)과 제 집사(執事)를 인도(引導)하여 소정(所定)의 위치(位置)에 들어감. 대축(大祝)과 제 집사(執事)가 사배(四拜)함.
대축(大祝)과 제 집사(執事)가 관세위(관洗位)에 나아가 세수(洗手)하고 대성전(大成殿) 계상(階上)에 정열(整列)함.
3 알자(謁者)와 찬인(贊引)이 초헌관(初獻官), 아헌관(亞獻官), 종헌관(終獻官), 분헌관(分獻官)을 인도하여 소정의 위치에 들어감.
알자(謁者)가 초헌관(初獻官)에게 행사(行事)를 청함. 당하악(堂下樂)과 문무(文舞)를 시작함. 헌관(獻官)과 참례자(參禮者) 일동(一同)이 사배(四拜)함.
4 전폐례(奠幣禮) : 알자가 초헌관을 인도하여 관세위에 나아가 세수하고 공부자대성위 앞에 나아감. 당상악과 문무를 시작함. 초헌관이 공부자대성위 앞에 꿇어 앉아 세 번 분향하고 폐백(幣帛)을 드리고, 차례로 안자성위(顔子聖位)와 증자성위(曾子聖位), 자사성위(子思聖位), 맹자성위(孟子聖位)에 나아가 분향하고 폐백을 드리고 소정의 위치로 돌아감.
5 초헌례(初獻禮) :알자가 초헌관을 인도하여 공부자대성위에 올릴 술상 앞에 나아감. 당상악과 문무를 시작함. 공부자대성위 앞에 나아가 술잔을 올리고 조금 물러서서 꿇어 앉음. 대축이 축문(祝文)을 읽음. 초헌관이 안자성위, 증자성위, 자사성위, 맹자성위 순으로 나아가 각각 술잔을 올리고 소정의 위치로 돌아감.
6 아헌례(亞獻禮) :알자가 아헌관을 인도하여 관세위에 나아가 세수하고 공부자대성위 앞에 나아감. 당하악(堂下楽)과 무무(武舞)를 시작함. 공부자대성위 앞에 술잔을 올리고 다음 사성위(四聖位) 순으로 각각 술잔을 올리고 소정의 위치로 돌아감.
7 종헌례(終獻禮) :알자가 종헌관을 인도하여 관세위에 나아가 세수하고 공부자대성위 앞에 나아감. 당하악(堂下楽)과 무무를 시작함. 공부자대성위 앞에 나아가 술잔을 올리고 다음 사성위 순으로 각각 술잔을 올리고 소정의 위치로 돌아감.
8 분헌례(分獻禮) :종헌관이 행례를 위해 장차 전에 오르려고 하면 찬인이 동종향 분헌관과 서종향 분헌관을 인도하여 관세위에 나아가 세수하고 동종향 분헌관은 동종향 십칠위(十七位)에 분향하고 술잔을 올리고 서종향분헌관은 서종향 십칠위(十七位)에 분향하고 술잔을 올리고 소정의 위치로 돌아감.
9 음복례(飮福禮) :알자가 초헌관을 인도하여 음복하는 곳에 나아가 석전에 드린 술과 포(脯)를 받아 음복함. 헌관이 사배함. 대축이 철상(撤床)함. 당상악을 하다가 그치고 다시 시작함. 헌관과 참례자 일동이 사배함.
10 망예례(望瘗禮) :알자가 초헌관을 인도하여 분축(焚祝)하는 곳에 나아감. 악을 그침. 대축이 분축함. 알자가 초헌관에게 예필(禮畢)을 고함. 알자와 찬인이 헌관을 인도하여 퇴출함.

헌관 및 집사의 명칭과 임무

초헌관(初獻官)
5성위에 향을 사르고 첫 잔을 올리는 제관으로 제사의 주인이다.
아헌관(亞獻官)
5성위에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제관.
종헌관(終獻官)
5성위에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제관.
분헌관(分獻官)
종향위(從享位)에 향을 사르고 잔을 올리는 제관.
당상집례(堂上執禮)
한문 홀기를 읽어 진행을 담당하는 제관.
당하집례(堂下執禮)
원래는 동서무 진행을 담당하는 집례였으나 현재는 동서무에 위패를 모시지 않아 대성전 월대밑에 서서 해설을 담당하는 제관.
전사관(典祀官)
나라의 제사에 제수를 준비하고 제상을 차리는 일을 맡은 제관.
대축(大祝)
축문을 읽는 제관.
알자(謁者)
초헌관을 안내하는 집사.
찬인(贊引)
헌관과 대축을 안내하는 집사.
봉향(奉香)
향(香)을 받드는 집사.
봉로(奉爐)
향로를 받드는 집사.
봉작(奉爵)
준소(樽所:술항아리를 놓아두는 곳)에서 사준이 따른 술잔을 받아 헌관에게 건네주는 집사.
전작(奠爵)
헌관에게서 술잔을 받아 신위 앞에 올리는 집사.
사준(司樽)
준소에서 술을 잔에 따르는 집사.

공부자탄강기념일

탄강작헌례(誕降爵獻禮) : 공부자의 탄강일에 올리는 의례

인류의 위대한 스승 공부자(孔夫子)께서는 인간의 가치와 도리, 사람답게 살아가는 이치를 우리에게 알려주신 분이십니다. 유교는 바로 인간의 관계 속에서 윤리 도덕을 기초로 한 철학이고 종교입니다. 유학의 근본 사상을 인(仁)이라고 하는데, 논어에 나타난 공부자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인은 곧 사랑이다" 라고 한 마디로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공부자의 가르침은 한중일 유교사상을 통해 널리 알려졌으며, 현재 유교의 종주국이자 유교의 가르침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고 있는 곳은 대한민국입니다. 이미 석탄일, 크리스마스가 대한민국 공휴일이듯 공부자탄강일 역시도 한국전통사상의 하나로 자리잡은 유교의 사상과 가르침을 되새기는 의미에서 공휴일로 제정되어야 합니다.

고유

국가나 성균관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그 내용을 공자에게 고하는 의식인데 조선시대에는 성균관의 중요한 관직의 임명 때, 대성전을 수리하기 위해 위패를 이안(移安)하거나 공역(工役)이 끝나고 다시 환안(還安)할 때 의식을 거행했으나 현재는 성균관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신임 임원이나 전교(典校)를 임명할 때, 성균관대학교의 입학식과 졸업식 때 올리는 의식이다.

시기
성균관 대학교의 입학식과 졸업식을 제외하고는 부정기적이다.
장소
성균관
방법
헌관이 집례의 창홀에 따라 분향을 하고 부복을 하면 대축(大祝)이 해당사실을 적은 고유문을 읽는다.

분향

공자를 비롯한 선성선현(先聖先賢)에게 향을 피우는 삭망(朔望)분향.

분향시기
음력 매월 초하루(朔)와 보름(望) 오전 11시 (설날과 추석에는 정오(正午)에 분향을 한다)
분향장소
성균관 대성전과 전국 향교 대성전
분향방법
헌관이 집사를 대동하고 창홀(唱笏 : 집례가 의식절차를 부르는 것)에 따라 성현을 참배하며 향을 피우는 의식.
참가범위
유림과 일반인(예약자에 한함)
 

반중잡영(정조때 윤기저작)에 나온 분향례

[咏朔望焚香]- 초하루와 보름에 행하는 분향례를 노래하다.

분향례 전 날의 새벽 연향례

焚香前日早延香. 碑閣傍邊列作行. 吏負函乘官押後. 下橋過處鞠躬忙. (延香禮)

탕평비각 근처에서 나란히 열 지어 기다린다.
아전은 함을 지고 말을 타고 관리는 뒤에서 감독한 후,
말에서 내려 향석교(香石橋)를 건너오면 황망히 국궁(鞠躬)한다.

以下咏朔望焚香

아래는 삭망의 분향 의식을 읊었다.

每晦日及十四日朝。行延香禮。臨時下人引齋儒出。列立香橋碑閣邊。吏負香函乘馬。香官隨後。至橋下馬而過。則一齊鞠躬。

매월 그믐 및 14일의 아침마다 연향례(延香禮)를 봉행한다. 도착시간이 임박하면 하인이 동·서재의 유생을 인도하여 나와서 향석교의 탕평비각 옆에 열을 지어 선다. 아전이 향함을 지고 말을 타고 오고, 향관은 뒤에서 "향함을" 수행한다. 향석교 다리에 도착하면 말에서 내려 다리를 통과하는데 모든 사람은 일제히 국궁(鞠躬)한다.

焚香朔望未明時。守僕三呼促外儀。下輦臺前北向立。列書擧案火光隨。

삭망 분향일이 되면 날도 밝기 전부터
수복이 재촉하여 3번 ‘외의(外儀)’를 연호한다.
하련대 앞에 북쪽을 향하여 서서
불빛을 따라 거안에 줄지어 서명한다.

每朔望曉將焚香。先打起寢洗水鼓。然後守僕三呼請外儀。則儒生出立下輦臺前。北向成列。隨炬火光書擧案給守僕。

매월 삭망일에는 새벽에 분향례를 실시한다. 먼저 기침(起寢)과 세수(洗水)의 북을 친 후, 수복이 큰 소리로 3번에 걸쳐 ‘외의(外儀)’를 청한다. 유생들은 하련대(下輦臺) 앞에 나와서 북쪽을 향하여 열을 지어 선 후, 횃불 아래에서 거안(擧案)에 서명하여 수복에게 건넨다.

守僕六人典字巾。眞紅團領色鮮新。班中尋得曹司出。引向獻官廳上臻。

전자건(典字巾) 차림의 수복 6명, 진한 홍단령 색깔도 선명하다. 반열 중에 조사(曹司)를 찾아 앞으로 나오라 하여 헌관(獻官)을 모시러 향대청으로 보낸다.

守僕六人。盖大聖位 四聖位 東西從享東西廡各一人也。着典字巾紅團領。旣受擧案。掌議或班首。差定奉香奉爐執禮。奉爐則以下齋及四庠中一人爲之。執禮則以前第三榜中人爲之。盖新榜爲下色掌榜。其前榜爲上色掌榜。又其前榜爲執禮榜。執禮榜中若無參者。則又以其前榜爲之。守僕尋得班中最少年。引向獻官所在香大廳。揖以迎出。曹司若有同庚。則又分其生日先後。故或有厭避曹司。而詐增其月日者云。可笑也。

수복은 6명인데 대개 대성위, 사성위, 동·서종향, 동·서무에 각각 한사람씩이다. 전자건과 홍단령을 입고 거안을 접수한 후에 장의나 반수가 봉향(奉香)과 봉로(奉爐), 집례(執禮)를 차출하여 정한다. 봉로는 하재생 및 사학 가운데 한사람으로 정하고, 집례는 이전에 3방(三榜)을 지낸 사람으로 정한다.

대체로 신방(新榜)이 하색장방이 되고 그 전방(前榜)이 상색장방이 되며 또 그 전방이 집례방이 된다. 집례방 가운데 만약 참여자가 없을 경우에는 또 그 전방으로 정한다. 수복(守僕)은 반열 중에서 가장 나이가 적은 사람[曹司: 조사]을 찾아서 헌관이 계신 향대청으로 인도하면 "헌관에게" 읍하여 예의를 갖추고 뫼시고 나온다. 조사가 만약 나이가 동갑[동경(同庚)]이면 또한 그 생일의 선후로 구분한다. 그러므로 간혹 조사(曹司)가 되기를 싫어하고 기피하여 거짓으로 그 "태어난" 달과 날을 늘리는 자도 있다고 하니 가소로운 일이다.

曹司前導獻官來。揖就班頭側立陪。復見香官隨後至。一時多士鞠躬催。

조사가 앞에서 인도하여 헌관이 나오시면 읍하고 제일 앞에 나아가 곁에 서서 모신다. 연이어 향관이 뒤따라 도착하면 일시에 모든 선비에게 국궁(鞠躬)을 재촉한다.

曹司隨守僕在獻官前導以出來。立於班前。守僕揖。曹司亦揖。仍陪立於側然後香官陪香出來。守僕呼鞠躬。香官仍上階入門。受香奉安卓上。

향이 들어가면 제생이 모두 비각 옆의 소신문(小神門) 밖으로 옮겨가 선다. 조사도 헌관이 오면 읍(揖)한다. 향관이 향을 올린 후, 소신문을 경유하여 나와 헌관의 아래에 선다. 수복은 집례와 찬인을 인도하여 먼저 들어가 사배례를 행한다. 사배례를 마치면 찬인은 다시 나와서 헌관에게 읍한다. 헌관이 들어가면 제생들도 모두 따라서 층계를 오르는데 소신문을 통과여 "문이" 메어지는 듯이 들어간다. 하재생과 사학의 유생도 따라 들어간다.

殿庭趍進衆靑衫。排列後前肅穆咸。小子油然尊慕意。怳如先聖儼臨監。

대성전 뜰로 바삐 나아가는 청삼(靑衫)의 무리들 앞뒤로 배열함이 모두 엄숙하고 화목하다. 학생들 뭉게구름처럼 존경과 추모의 뜻 복받치니 마치 공자께서 의젓하게 굽어보시는 듯 황홀해 한다.

靑絲捲箔殿門開。門外朱床望裏嵬。試看床上安排物。香盒香爐兩燭臺。

푸른 실로 말아 올린 발 너머로 대성전 문 열려 있고 문 밖에서 의연하게 놓여있는 붉은 제사상(床) 아득히 바라보네. 상 위의 놓인 기물(器物)을 살펴보니 향합과 향로와 쌍(두개의) 촛대로다.

殿門外設箔。是曉捲絲開門。於門前當中。設朱卓。卓上安兩燭臺燃燭。又安香爐於正中。香盒在其東。

대성전 문 밖에 발을 설치해 놓고 새벽에 실을 감아올리고(줄을 감아 올려) 문을 연다. 문 앞의 정 중앙에 붉은 탁자가 놓여있는데 탁자 위의 쌍(두개의) 촛대에 촛불을 켜놓고 또한(빼도 될 듯) 향로를 정중앙에 배치한 후에 향합을 그 동쪽에 둔다.

執禮階前笏記扶。只隨守僕一聲呼。引着獻官盥手詣。奉香上處奉爐俱。

집례는 계단 앞에서 홀기를 잡고 다만 수복의 말에 따라 큰소리로 연호한다. 헌관을 인도하여 관세위로 나아가니 봉향이 올라간 곳에 봉로도 함께한다.

執禮贊引立臺下層階之傍。執禮持笏記。只隨守僕之聲。守僕曰呼。則執禮唱。贊引引獻官詣盥洗所。遂引詣香所。奉香及奉爐執禮皆隨而上。

집례와 찬인은 월대 아래의 층계 곁에 서 있다. 집례는 홀기를 잡고 다만 수복을 따라 복창(復唱)한다. 수복이 ‘부르오’하면 집례가 홀기를 읽는다. 찬인이 헌관을 인도하여 관세위로 나아가고 "관세를" 마치면 인도하여 향소로 나아간다. 봉향과 봉로와 집례도 모두 따라서 올라간다.

奉香東跪奉爐西。三上香餘復位齊。隨唱一時行四拜。篆煙馥郁殿中迷。

봉향은 동쪽, 봉로는 서쪽에서 각각 무릎 꿇고 세 번 향을 사른 후에 가지런히 자리로 돌아간다. 창홀(唱笏)에 따라 일시에 4배(拜)를 올리니 아지랑이 같은 연기와 향기, 전내(殿內)에 자욱하다.

獻官旣跪於卓前。奉香奉香東跪。奉爐奉爐西跪。獻官三上香於爐。則各安於卓上。獻官及諸執事皆降復位。行四拜訖皆出。

헌관이 탁자 앞에서 무릎을 꿇으면 봉향은 향을 받들어 동쪽에서 무릎 꿇고, 봉로는 향로를 받들어 서쪽에서 무릎을 꿇는다. 헌관이 향로에 3번 향을 사르면 각자 탁자 위에 "향로를" 안치하고 헌관과 제집사가 모두 내려와 자리로 돌아간다. 4번 절하고 "절이 끝나면" 모두 밖으로 나온다.

 

봉심

봉심
유림이나 일반인 및 학생 등이 문묘를 참배하고 향을 올리는 의식
분향시기
수시(사전 예약)
 

탐방

탐방
유림이나 일반인 및 학생 등이 문묘를 탐방하고 참배하는 의식
탐방시기
수시(사전 예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