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 명소들


성황사(2009년 홀기 서울시 기록 문화재 제44호)

 

성황사는 궁산의 정상 동남쪽의 약간 낮은 곳에 고목나무 한그루와 사당 한 채로 되어 있었다는 기록이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고 있다.

최초의 성황제는 고려시대부터 이어져오며 초기에는 중앙권력이 지방의 백성을 다스르기 위한 방법으로 시작되었다. 특히 관산(궁산)의 성황사 성황제는 양천고을 수령이 올렸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양천향교 고서를 정리하던 중 새로운 고문서를 발견하여 감정을 의뢰한 결과 양천현 홀기로 판명되었다. 여기에 성황제를 지낸 홀기도 포함되어 서울시문화재로 등록되었다(2009년 2월 20일). 2002년부터 서울시역사박물관에서 연구 중이며 2005년 올려진 성황제를 전통적인 제례형식을 갖추려고 역사박물관과 양천역사보존회와 노력하고 있다.

2008년까지는 치성비요(19894년에 제작되어 1921년에 수정)는 문헌에 의해 성황제를 올렸다. 2009년 11월 17일 지낸 성황제 및 산신제는 이번 새로이 발견되어 서울시문화재로 등록된 양천현 홀기에 의해 제를 올렸다.

궁산 성황제는 성재정리, 공암리, 후포리, 마곡리, 읍내동 전마을의 단일행사였으나 1894년 갑오경장 이후부터는 각 마을 행사로 따로 제를 올렸다. 궁산성황사에서 먼저 제를 올리고 그 다음에 각 마을에서 올린다.

산신제와 성황제의 의미는 매년 음력 시월 초하루 산신과 성황신께 이곳에 사는 주민과 가축이 무병하고 곡식은 풍년이 들게 해달라는 기원이며 수백년을 이어온 가양동만의 행사이다. 참고로 궁산에 모신 성황신은 여신으로서 주민들은 도당 할머니라 부른다. 후포마을에도 성황제를 올리나 도당 할머니 제사 후 올리는 것을 법으로 여기며 후포마을에서 모시는 도당신은 남신으로 불리운다. 궁산 정상의 성황사는 2009년 가양동읍내 노인정과 양천역사보존회가 중심이 되어 주민들의 성금을 보태여 지금의 모습으로 정리되었다.

목록